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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소설

줄리안 반스 '연애의 기억' 사랑이 끝나고 남는 것은?

by essay™ 2022. 2. 4.

전 생애를 온통 뒤흔든 연애의 기억 

사랑은 질병처럼 경험되는 것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줄리안 반스의 '연애의 기억'(다산책방, 2018)은 사랑의 시작과 끝에 대해 탐구를 거듭하는 소설이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아마도 가장 슬픈 사랑의 전형이 아닐까 한다.

열아홉 대학생과 마흔여덟 유부녀의 사랑 이야기는 그 결말을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줄리안 반스의 <연애의 기억>은 통속적인 연애 소설과는 그 결이 많이 다르다.

3부로 이루어진 <연애의 기억>은 일흔 살에 접어든 주인공이 50여 년 전, 십대의 끝자락에 있었던 격렬했던 사랑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1인칭으로 시작하여 2인칭이 혼재다가 3인칭으로 마무리한다. 엔딩은 1인칭으로 짤막하게 서술된다. 사랑에 대한 기억을 주관과 객관을 섞어 이야기한다. 인칭 변화를 못 알아볼 정도로 인칭의 넘나듦이 자연스럽다. 

이 소설의 원제는 "The Only Story"로 누구이든 인생에는 유일한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다. 유일한 이야기는 물론 사랑 이야기다. 그런데 <연애의 기억> 이야기는 너무 고통스럽다. 1부가 끝나고 2부로 넘어가면 그들 앞에 놓인 사랑 이야기에 책장 넘기기가 두려워진다.

처참하고 비통한 결말이 예상되지만 파국에 이르는 사랑의 행로가 잡아끄는 힘이 세다. 그러니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베기는 소설이다. 사랑이 떠난 빈자리에는 무엇이 남았는지 지켜보는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연애의 이면>은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지켜보는 힘을 내어준다. 멈출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파국적 결말이 뻔히 예정된 사랑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사랑은 언제나 질병처럼 경험되는데 말이다.

작가 줄리안 반스는

2011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대표 소설가다. 영국 중부 레스터에서 1946년 태어난 줄리안 반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현대 언어를 공부했다. 문학 편집자로 일했고 TV평론가도 활동했다.

1980년, 첫 장편소설 <메트로랜드>로 등단했다. <플로베르의 앵무새> 등 여러 장편소설과 <사랑을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등의 에세이를 펴냈다. 

줄리언 반스는 <연애의 기억> 주인공 케이시 폴처럼 십 대 후반에 50대 초반의 여인 라우리언 웨이드를 만나 그녀에게 끌렸다. 그러니 이 소설은 어쩌면 작가의 대체역사일지도 모를 일이다. 

책표지

연애의 기억 줄거리

첫사랑은 삶을 영원히 정해버린다 

1960년대 초, 런던 교외의 한 빌리지. 열아홉 살 대학생 케이시 폴은 여름 방학을 맞아 어머니의 권유로 테니스 클럽에 참가한다. 케이시 폴은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복식혼성 경기에서 또래 여자애가 아닌 마흔여덟 살의 중년 부인 수전 매클라우드와 한 팀이 된다. 그 순간 그들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제비(lot)뽑기로 파트너가 정해진 수전과 폴의 나이차는 자그마치 29살. 수전의 두 딸이 폴의 또래였다. 그럼에도 케이시 폴은 수전 매클라우드에게 정통으로 사랑에 빠져들었다. 수전은 테니스를 잘 치는 만큼 위트도 넘쳤다. 닳아버린 세대에서 풍기는 위선이나 가식이 없었다. 중산층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자유분방함이 매 순간 빛났다.

케이시 폴은 고루한 중산층의 가치를 경멸했다. 그 당시 또래들이 하는 연애들도 경멸했다. 관습을 깨고 자신이 하는 사랑만이 진실한 사랑이라는 자부심이 그를 사로잡았다.

수전도 그런 케이시 폴에게 정통으로 사랑에 빠져들었다. 둘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그들의 사랑 감정에만 충실한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첫사랑은 늘 압도적인 일인칭으로 벌어진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압도적 현재형으로, 다른 인칭들, 다른 시제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십 대의 남자와 중년의 유부녀가 사랑에 빠졌다는 스캔들은 빠르게 퍼졌다. 폴의 부모가 알게 됐고, 테니스 클럽은 그들을 회원에서 제명했다. 그럴수록 케이시 폴은 자신의 사랑이 공인을 받았다는 생각으로 의기양양했다. 수전은 폴에게 말했다.

"오 케이시, 아직 나를 포기하지 말아요."

그 무렵은 수전은 폴을 '깃털이 화려한 내친구'로 불렀다. 옷을 잘 차려입은 부유한 젊은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폴은 자주 수전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남편과 십자말풀이도 했다. 수전과 잠을 잤음은 물론이다. 수전은 사랑의 횟수를 백 번째까지 세었다. 

깃털이 화려한 내 친구

어느날 수전은 앞니가 부러졌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에 폭행을 만성적으로 저질렀다. 폴은 자신만이 수전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폴은 수전의 도주자금으로 런던에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구했다. 

런던에서 폴은 법률가가 되기 대학을 다녔다. 수전은 가끔 외로웠고, 폴은 여자 친구가 새로 생기기도 했다. 이 무렵 수전은 폴을 '깃털이 화려한 내 친구'에서 '이 더러운 외박꾼'이라고 불렀다. 우울증에 빠져들었고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수전도 남편처럼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미친 여자'라 불렀다. 병원을 들락거렸고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너는 이미 좋은 섹스와 나쁜 섹스가 있다는 것을 안다. 당연히, 나쁜 섹스보다 좋은 섹스가 낫다. 나쁜 섹스가 아예 섹스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또 가끔은 자위보다 낫다고, 가끔은 그렇지 않지만.

하지만 이것이 존재하는 섹스의 모든 범주라면, 잘못 알고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슬픈 섹스다. 슬픈 섹스는 모든 섹스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이다. 슬픈 섹스는 이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반드시 행복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다." 

내 평생 어디 있었어?

정신병원에 입원한 수전은 폴을 못 알아볼 때가 많았다. 그들이 연애를 시작했을 때 수전이 즐겨 하던 "내 평생 어디 있었?"를 맥락 없이 내뱉곤 할 뿐이었다. 오직 자신만이 수전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환상이 아니었음을 폴은 깨닫는다. 그것은 현실성이었으며 잔인한 필연성이었음을.

그리고 대체역사를 상상하기도 했다. 비현실적인 가정문이 그를 괴롭혔다. 

"그가 테니스 클럽에 도착했을 때 시간을 주체하기 어렵고 사랑을 간절히 원하고 있던 열아홉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수전이, 종교적 또는 도덕적 관념 때문에,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을 막고, 빈틈없이 혼합복식을 칠 수 있는 전술만 가르쳤다면 어땠을까? 매클라우드가 계속 아내에게 성적 관심을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이 모든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는 미래에 아무런 의무가 없지만 나이가 들면 과거에 의무가 생긴다는 걸 깨닫알았지만 폴은 딸에게 수전을 돌려주고 여러 도시를 떠돌게 된다. 그때가 마흔이었다.

그 후로 그에게는 이제 수전의 몸에 대한 성적 기억이 사라져 버렸다. 키스를 어떻게 했더라? 그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조심스럽고 신중해진 폴은 그후로 여자들은 가볍게 만났을 뿐 결혼은 하지 않았다.

일흔에 접어들기까지 폴은 자신의 사랑을 조심스럽고도 신중하게 검토하고, 또 검토하기를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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