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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장편소설

by essay™ 2022. 3. 19.

황정은의 간명하고도 아름다운 문장이 묘사하는 삶에 대한 무한한 애정

전심전력의 사랑과 그 정도의 사랑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창비, 2014)는 소라와 나나 그리고 나기, 세 남매의 어린 시절과 연애 이야기를 그린 장편 소설입니다. 소라와 나나는 피를 나눈 자매이고 나기는 어린 시절 이웃 방에 살았던 오라버니입니다.

소라와 나나, 나기는 모두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소라와 나나의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다 거대한 톱니바퀴에 말려들어 죽었고, 과일 장사를 하였던 나기의 아버지는 시장통에서 갑자기 쓰러져 죽었습니다.

소라와 나나는 아버지가 죽자 엄마 애자와 함께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하게 됩니다. 그 지하 단칸방은 둘로 구획되어 현관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구조였습니다. 소라와 나나는 거기서 나기를 만납니다.

소라와 나나의 엄마, 애자는 본인의 이름 그대로 사랑으로 가득하고 사랑으로 넘쳐서 사랑뿐인 사람이었습니다. 사랑뿐이던 애자는 남편이 죽자 껍질만 남은 묘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애자는 어린 소라와 나나를 내버려두고 일주일 넘게 집을 비우기도 했습니다. 나기의 엄마, 순자가 하는수 없이 소라와 나나의 도시락을 6년 동안이나 싸주었습니다. 

어른이 된 소라는 식당 밥이 입에 맞지 않아 도시락을 싸다니기로 결심했지만 두달도 채 걸리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소라는 순자의 도시락이 특별하게 화려한 반찬도 없었는데 정말 맛있었다고 회상합니다. 

도대체 비결이 뭐냐고 묻자, 순자는 소라를 한번 쓱 바라보더니 연륜,이라고 답합니다. 나이를 말하는 거냐고 묻자 단순하게 그런 것은 아니라고 순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새끼를 먹여본 손맛이지.
그런 연륜.

새끼를 먹여본 그 손맛에 소라와 나나, 나기는 말하자면, 한뿌리에서 자란 감자처럼 양분을 공유한 사이니까 그 셋은 남매와 다름없습니다. 소설가 황정은은 소라와 나나, 그리고 나기의 관계를 이렇게 멋진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뼈에도 나이테라는 것이 있다면 나기네 밥을 먹고 자란 시절의 테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 소라와 나나, 나기는 남매나 진배 없습니다. 황정은의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이 세 남매가 성장하기까지의 눈물 나는 이야기와 어른이 된 현재의 연애를 작가 특유의 담담한 문장으로 파고 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황정은 장편소설 표지

목차 

소라小蘿
나나娜娜
나기鏍其
나나娜娜

황정은 특유의 운율감

계속해보겠습니다는 소라가 먼저 이야기를 하고, 나나가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나기가 이야기한 다음에 다시 나나가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마무리합니다. 새남매와 공유한 어린 시절과 현재가 새남매의 시선에서 펼쳐집니다. 소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 이름은 소라.
소라의 라는 미나리 라蘿. 본래 열매 라蓏를 사용할 예정이었으나 호적에 이름을 올리러 간 할아버지의 실수로 미나리가 되었다. 생전에 미나리를 즐겨 드셨다고 하니 실수고 뭐고 다만 취향의 반영인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게 라蘿와 라蓏는 형태 자체가 다르지 않아? 도저히 헤갈렸다고 할 수 없는 글자들이잖아요, 할아버지. 할아버지에 관해 기억하는 바로 별로 없다. 

이 리드미컬한 운율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쭉 이어집니다. 때론 처연하게, 더러는 담담하게, 혹은 자포자기의 심연으로, 그러나 소박하지만 결연한 생에 대한 애정으로.

소라와 나나의 엄마, 애자는 너희의 아버지가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특별해서 그런 일을 겪은 것은 아니라고, 인생의 본질이 허망한 것이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죽고 나면 그뿐.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므로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다고.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으로 세계를 채우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소라와 나나는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듣고 자랍니다.

소라의 부족

그런 까닭일까요? 소라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애자는 없는 게 좋다. 애자는 가엾지. 사랑스러울 정도로 가엾지만, 그래도 없는 게 좋아. 없는 세상이 좋아. 나는 어디까지나 소라. 소라로 일생을 끝낼 작정이다. 멸종이야. 소라,라는 이름의 부족으로."

네, 소라는 소라라는 이름의 부족이 되기로 기꺼이 결심합니다. 족장도 소라, 부족원도 소라, 오직 한 사람뿐이지만, 뭐 그럼 어때요? 그렇게 사는 거지요. 그렇게 고단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단 한 사람만 존재하는 부족으로 살아갈 수밖에요.

그런데, 소라의 동생 나나는 덜컥 임심을 합니다. 애인 모세는 말이 없고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결혼을 할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집에 인사하러 갔을 때 나나는 모세의 아버지가 배설한 요강을 모세의 어머니가 비운다는 사실을 꺼림칙하게 생각합니다. 

그 정도였던 것입니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윽고 괜찮아지는 정도,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습니다. 아기가 생기더라도 아기에게든 모세 씨에게든 사랑의 정도는 그 정도,라고 결심해두었습니다. 
애자와 같은 형태의 전심전력, 그것을 나나는 경계하고 있습니다.

네, 나나는 임심을 한 것이 두려웠지만, 미혼모로 아기를 키우는 미래 또한 두려웠지만, 자신들이 애자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아기에게 되풀이하지 않게 '결혼'을 선택지에서 과감히 지워버립니다. 자세한 사연은 소설을 참고하세요.

그 정도가 좋습니다

아무튼, 나나는 계속해보겠습니다의 대미를 장식하는 주인공입니다.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는 애자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나나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한편 생각합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쁜 걸까.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세계의 입장에서 우리 인생은 한낱 먼지입니다. 무의미해서 소중한 것은 아닐까라는 작가의 말은 많은 딜레마를 낳습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라'는 말이 되니까요.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으면서 소라와 나나, 그리고 나기가 정말 외로운 청년들이라고 느꼈습니다. 동병상린이라고 했나요? 그래도 소라에겐 나나와 나기가 있고, 나나에겐 소라와 나기가 있고, 나기에겐 소라와 나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나나와 같은 자매가 없습니다. 외로움은 인생에서 극복해야할 가장 강력한 적이라는 걸 실감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려면 전심전력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반하는, 딱 그 정도의 사랑이 적당하다는 나나의 말은 공감하기 여전히 어렵습니다.

2인칭으로 시작되는 나기의 이야기, 동성애도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황정은의 소설에는 꼭 동성 커플이 등장합니다. 소수자를 향햔 작가의 애정은 짐작이 가고도 남지만 이 소설의 흐름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황정은의 소설에는 매료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입안에 감미롭게 흐르는 운율, 무언가 성가신 운율이 외면하고 싶은 과거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황정은의 소설을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황정은 프로필

황정은의 단편소설 대니  드비토는 사랑과 인생에 대한 아주 강력한 운율을 선사하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대니 드비토의 확장판이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가 아닐까 합니다. 

작가는 세운상가에 일하는 아버지를 도우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황정은 작가 프로필과 작품 리뷰는 다음 블로그 글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독후감

황정은 오래지 않아 날이 밝을 것라이며 "계속해보겠습니다"하고 이 소설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계속해보겠다는 말은 나나의 의지이자 작가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아기를 가졌지만,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키워보겠다는 한 여자의 결의이기도 합니다. 나나는 임신을 하면서 엄마, 애자를 뛰어넘습니다. 사랑으로 인하여 더는 타자가 불행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결의 말입니다. 

어찌 보면 현실과의 타협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애자와 같은 전심전력의 사랑의 인하여 소라와 나나 같이 불행을 겪는 삶을 불허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발로로 읽히기도 합니다.

이렇게 블로그에 독후감을 올리는 것도 더없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저 또한 계속해보겠습니다.

작가가 소설을 씀으로 인하여 독자가 생기듯이, 포스팅을 함으로써 이웃의 인연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라처럼 단 한 사람의 칼리오페 부족이라는 이름에 지나지 않지만·····.

황정은 작가의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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