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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소설

달까지 가자, 장류진 장편소설 데뷔작

by essay™ 2021. 12. 31.

'달까지 가자'(2021)는 장류진의 첫 장편 소설입니다. 그녀의 첫 번째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신간이 나왔다길래 읽어 보았습니다. 역시 빠르게 잘 읽히는 문장이었습니다.

달까지 가자라는 제목을 보고 달달한 로맨스 소설일까 상상을 해봤는데요. 땡, 이 소설은 팍팍한 현재를 살아가는 20~30대 여성들의 세태를 그린 소설입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지금 어디에선가 살고 있을 언니들의 수다를 들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인공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대기업 마론제과에 다니는 정다해와 강은상, 김지송입니다. 화자는 정다해입니다. 셋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공채 출신이 아니라 회사 안에서 '근본 없는 애'라는 은근한 차별을 받고 있는 처지입니다.

셋이 온라인에서 수다를 떠는 그룹채팅방 이름도 그래서 'B03'입니다. 다해와 은상, 지송은 나이도 연차도 약간씩 달랐지만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서 다들 그냥 편하게 '동기'로 생각합니다. 

회사 내에서 비슷한 처지이다 보니 금세 친해졌고, 다해는 은상 언니와 지송이 어릴 때부터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들보다 더 가볍게 느껴지며 잘 통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이들이 어떻게 달까지 가지?라는 엉뚱한 생각이 자꾸 꼬리를 잡았습니다. ㅎㅎ

달까지의 거리와 이동 시간

아무리 위성이라지만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는 약 38만 4,400킬로미터이고, 걸어서 가려면(시속 5킬로미터) 3,203일(8년 9개월)이, 시속 100킬로미터 자동차로는 3,844시간, 160일이, 시속 800킬로미터의 비행기로 날아가더라도 480.5시간, 약 20일이 걸리는 먼 거리이니까요.

아, 혹시 주인공들이 어찌어찌하여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우주선을 탄다거나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의 우주 로켓 '뉴 셰퍼드'라도 타게 된다는 것일까 등등.

장류진 작가는 다행히 이 궁금증을 초반부에 풀어주었습니다. 제일 먼저 강은상이 가상화폐 이더리움 투자를 시작했고, 다음엔 정다해가, 마지막으로 김지송이 이더리움 투자에 나서게 되는 과정을 장류진 작가는 쫄깃한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To the Moon'

그 무렵 채팅방의 이름이  'To the Moon'으로 바뀌었고, 'To the Moon'은 자신이 매수한 가상화폐의 가격 폭등을 바라는 전세계 투자자들의 은어였다고 다해는 말합니다.

네 맞습니다. 소설 '달까지 가자'는 가상화폐에 투자하여 수익을 올려 달까지도 갈 수 있는 종잣돈을 마련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문라이트의 상징은?

줄거리

소설 <달까지 가자>의 줄거리를 무미건조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강은상이 가상화폐 이더리움 투자를 제일 먼저 시작하여 존버 끝에 33억을 벌어 퇴사하였고, 2억 4천만원을 번 지송은 대만에서 흑당을 수입하는 사업을 구상하며 퇴사를 준비하고 있고, 정다해는 3억 2천만원을 벌었지만 퇴사할 정도는 아닌지라 앞으로의 삶의 계획들을 다이어리에 적으며 이야기는 끝납니다.

설마,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소설을 줄거리로만 읽지는 않겠지요. 소위 말하는 '떡상'과 '떡락'을 오가는 주인공들이 심리가 입체감이 있게 묘사되고 있는데요.

장류진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아마도 가상화폐 투자를 소액으로라도 하지 않았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가상 화폐 투자를 해보지 않고는 이런 문장이 도저히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1인거든요. 성향으로보아 가상화폐 투자를 꼭 하실 것 같은 생각이 어쩐지 들기도 합니다.

가상화폐의 세계

마지막까지 가상화폐의 유혹을 참아냈던 지송은 가상화폐 투자에 나서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언니, 그때 기억 나? 언니가 그랬잖아. 우리에겐 이제 이것밖에 남지 않았다고. 코인은 엉뚱한 곳에 난데없이 뚫린 만화 속 포털 같은 거라고. 요란하고도 희귀한 소리를 내면서, 기이하게 일렁이는 푸른빛을 내뿜으면서 열려 있는 이상한 구멍 같은 거라고. 께름칙해도 있을 때 들어가야 한다고. 이 기묘한 파장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건지, 이 이상한 소리는 대체 왜 나는 건지, 그런 거 계산하고 알아볼 시간이 없다고. 닫히기 전에 얼른 발부터 집어넣으라고. 오직 이것만이, 우리 같은 애들한테 아주 잠깐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 같은 거라고."
(···)
"난 그때 그 불가해한 구멍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결심했어. 언니가 그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그 동그란 구멍의 지름이 줄어드는 게 보이는 것만 같았거든."(328~329쪽)

네, 지금 이 시각에도 점점 줄어드는 구멍의 지름에 조급증을 느끼며, 그 구멍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얼른 발부터 집어넣으려고 아우성을 치는 벌개져 있을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눈들이 어디엔가는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달까지 가자> 주인공들이 믿는, 프리우스를 람보르기니로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이렇습니다. "1. 프리우스를 판다. 2. 이더리움을 산다. 3. 존버 한다. 4. 이더리움을 판다. 5. 람보르기니를 산다."(125쪽) 아주 단순한, 마법과도 같은 강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필로그

강은상과 정다해, 김지송은 위 강령대로 행동했고, 존버 했고, 마침내 성공했습니다. 해피엔딩! 필자가 전에 올렸던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찾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장류진 작가는 전작에서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라는 경구를 독자들에게 적어주며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했는데요. <달까지 가자>에서 주인공들에게 그 축원을 이루어 준 셈입니다. 만약 작가의 축원이 주인공들에게 통하지 않았다면 결말은 어땠을까요?

위 리뷰에서 <일의 기쁨과 슬픔>을 "조금은 무책임하고 조금은 위장된 기쁨을 추구하는 소설"이라고 평했는데, '달까지 가자'도 정확히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의 현실이 워낙 팍팍하니 이러한 공상이라도 해야 겨우 생존해 갈 수 있는 카지노 자본주의랄까요? 

책 표지 문라이트가 인상적입니다. 달이 상징하는 것은 문학적으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닿을 수 없는 세속적인 욕망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그래 봤자 달이 지구의 위성이라는 우주적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지만요.

2021년 마지막 소설은 우연찮게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가 되었네요. 모두 아듀 2021, 해피 뉴이어 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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