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연애소설의 최고봉
오늘 같이 추운 겨울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 맞다 맞다 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연애소설 한 편 소개합니다. 프랑스 여류 소설가 모니카 사볼로가 쓴 '나랑 상관없음'이라는 연애소설입니다.
작가 모니카 사볼로는
잡지 <엘르>와 <부아시>에서 편집자였는데요. 소설 <나랑 상관없음>은 그녀가 잡지사에 면접을 보러 가서 면접관이었던 팀장에게 연애감정에 빠져들고, 모든 연애가 그렇듯 결국은 헤어지게 되는 전 과정을 그린 자전적인 소설입니다.
2014년 국내에 소개된 이 짧은 연애 소설은 우리나라의 젊은 청춘 남녀들에게 작은 연애 사전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연애심리를 아주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는 연애소설의 백미입니다.
파격적인 형식, 나랑 상관없음
<나랑 상관없음>은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아요. 이 강렬한 첫 문장은 이 소설을 끌고 가는 방향타가 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MS이고, 상대방 남성은 XX입니다.
"맨 먼저 사랑에 눈머는 현상에 대해 알아보자. 한 인간이 자존심을 내세우며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다가 어떻게 느닷없이 이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리는지 말이다."
요즘 탈모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다, 아니다로 이슈이던데,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고 연애 불치병도 건강보험이 적용이 되도록 누가 공약을 안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연애를 고칠 수 없는 불치명으로 묘사하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우리의 주인공 MS는 그때부터 XX와 주고받은 메일과 문자는 물론이고 그가 썼던 라이터, 그가 피웠던 담배꽁초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수집하고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들을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탐정처럼. 연애에 빠져들면 다들 이렇게 하시나요?^^
이 소설에는 그와 주고받았던 문자가 등장하고 라이터와 담배꽁초 같은 것들이 사진으로 등장합니다. 파격적인 형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튀는 느낌 없이 이야기와 잘 어울리며 생동감을 부여합니다.
프랑스 플로르상 수상작
그러니 가장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소설에 준다는 프랑스 플로르상을 2013년에 수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니카 사볼로는 편집 일을 하면서 <릴리의 소설>과 <정글>을 썼고, 이 작품이 세 번째 소설입니다. 문체를 보면 패션 잡지처럼 굉장히 감각적입니다.
목차만 쭉 봐도 대충 이 연애소설의 성격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장의 제목은 '눈멂'이고, 소제목으로 넥타이 증후군, 사랑의 묘약, 사랑에 쉽게 빠지는 병의 결정적 원인에 관한 전문적 접근, MS와 XX의 접촉 보고서, 추억의 물건들, ··· 불면증에 관해, 신화적 장소, 징조 등으로 끝없이 이어집니다.
사랑은 불치병일까?
MS(다름 아닌 작가 모니카 사블로의 이니셜임을 언젠가부터 알게 됩니다)는 끊임없이 XX에게 다가가면서 사랑의 감정을 키워가는데, XX는 어떤 시점부터 자꾸만 멀어지려고 합니다. MS는 부두교에까지 사연을 보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선생님,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개가 주인 뒤를 졸졸 따르듯 제 뒤를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자유분방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지요. 이런 표현을 한 번도 떠올린 적이 없던 제게, 갑자기 이 관점이 확 와닿더라고요. 그래서 전단지에 적힌 대로 우표 붙인 봉투와 제 사진, 생년월일과 출생지,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피웠던 담배꽁초까지 동봉해서 편지를 보냅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얼마나 빵 터졌던지요. 연애를 하셨다면 한 번쯤 다들 이런 유사한 경험이 있으실 테지요. 부질없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면의 밤을 보낼 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요.
아무튼, MS는 "너 없인 안 돼. 안 된다고."라는 문자를 XX에게 보내지만, XX는 1시간 22분이 지나서야 "어쩌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인 것 같은데."라는 문자로 그들의 연애는 파국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나랑 상관없음>은 과거로 피드백하여 MS의 앙증맞은 어린 시설 사진을 보여줍니다. 연애의 무너짐이 과거를 소환하여 자신이 겪었던 연애감정의 실체를 부각하며 소설은 끝납니다.
대담한 프랑스 연애소설들
대체로 연애소설은 프랑스인 것 같습니다. 특히 프랑스 여류 작가들은 내밀한 사생활의 속살을 여과 없이 자전적 소설로 승화시키는 재능이 탁월한 것 같습니다. 영화 <연인>의 원작자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소설 <연인>(민음사, 2007)도 매우 관능적이지만, 연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그린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2015)도 파격적이기 이를 데 없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적나라한 연애 이야기는 아래 링크 글을 참조하세요.
그에 비해 <나랑 상관없음>은 풋풋한 풋사과 같은 연애담을 그린 소설입니다. 혹 사랑의 멀어짐으로 불면증에 시달리시는 분이 계시다면, 모니카 사볼로의 연애담이 헤어짐의 아픔을 치유하는 작은 거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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