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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소설

최진영 '구의 증명' 슬픔마저 뛰어넘는 지독한 사랑

by essay™ 2021. 12. 6.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2015)은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로 접하는 노벨라 시리즈네요. 황현진 작가의 '달의 의지'와 이영훈 작가의 '연애의 이면', 둘 다 느낌이 좋았기에 짬나는 대로 노벨라 시리즈를 접하고 있습니다.

노벨라는 단편의 짜릿함과 장편의 여운이라는 컨셉으로 은행나무가 기획한 중편 소설 시리즈입니다. 짧은 글을 소비하는 시대의 트렌드에 맞춘 기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두 시간이면 후딱 읽을 수 있으니까요.

'구의 증명'은 중편 소설이지만 여운이 묵직하게 남습니다.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사랑과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한 밀도를 묵직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만큼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가운데, 주인공인 '구'와 '담'의 지독한 사랑이 가슴에 깊게 스며오는 이야기입니다.

작가 최진영

작가 최진영은 1981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태어났다고 은행나무가 소개합니다. 낮엔 일하고 밤엔 글 쓰다가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는 소개글을 보고 아마도 '구의 증명'의 주인공 '담'처럼 차가운 현실 속에서 내공을 쌓아왔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장편소설로는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가 있고 소설집 '팽이'가 있습니다. 최진영 작가의 소설은 '구의 증명'이 처음이지만 멀지 않은 시간에 다른 작품들도 읽을 것 같습니다. 생각의 깊이가 은근했고, 문장의 중독성도 은근했거든요.

구의 증명 줄거리

사람의 인생을 보면 천차만별입니다. 전쟁 중에 태어나 전쟁만 겪다가 죽는 사람들이 있고, 기아와 질병 속에 태어나 그대로 삶을 마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 조상들의 전쟁에 휘말려 평생을 난민으로 살아가는 운명도 있습니다. 

'구의 증명'의 남자 주인공 '구'는 사채 빚만 잔뜩 남기고 부모가 사라지는 바람에 그 빚을 갚기 위해 빚쟁이들이 시키는대로 열심히 일했지만 원금은커녕 이자조차도 다 갚지 못한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평생을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한들 그들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구'는 이 도시로, 저 도시로 도망을 치고 또 잡히기를 반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삶을 버리고 청설모처럼 살기 위해 깊숙한 산속으로 숨어들기로 합니다.

책표지

그런 '구'를 사랑하고 따르는 운명의 여자가 있습니다. 주인공 '담'입니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담'은 할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비구니였던 이모와 살게 됩니다.  

한 동네에 살았던 구와 담은 초등학교 때부터 지독히도 가난하였던 까닭에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를 좋아하게 됩니다. 늘 손을 꼭 잡고 다니던 구와 담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과 멸시를 당하며 학창 시절을 보냅니다.

그럴수록 둘은 세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며 더욱 서로 결속됩니다.

사춘기가 되어 담과 구는 서로에게 여자와 남자로 각인됩니다. 그 과정을 작가는 구의 입을 빌려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담의 모든 말과 행동이, 바람 부는 거센 절벽 위에 나를 세워놓았다. 담을 볼 때마다, 아니 보지 않을 때도 담의 속살을 상상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상상은 과감해졌다. 한여름의 빛과 그림자처럼 현실도 상상도 적당하지 않았다.
(···)
담을 보는 것도 괴로웠고, 보지 않는 것도 괴로웠다. 더 가까워지고 싶었고, 행여 더 가까워질까 겁이 났다. 담이 앞에서만큼은, 나는 나를 최고로 경계해야 했다."(57 - 58쪽)

그러나 구와 담은 인생에서 가장 푸르디푸르러야할 청춘의 시기를 엄혹한 들판에서 보내게 됩니다. 고등학교 내내 공장에서 알바를 하던 구는 도망치듯 입대를 하고, 담은 이모마저 병으로 잃게 되자 대학 대신 마트에 취직하여 고기를 썰며 청춘을 보내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구는 군대에서 제대를 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빚쟁이들뿐이었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도망자의 삶뿐이었습니다. 그런 구를 담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고, 깊은 산속까지 같이 숨어들게 되었을까요?

"이모가 그랬어. 담아,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 부모도 서방도 자식도 없는데 니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러니까··· 나는 부모도 형제도 없고 이제 이모도 없는데, 니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145 - 146쪽)

단 한 사람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의지할 데라곤 오직 그 한 사람뿐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누가 있어 참 다행이다'라는 말은 참 두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결국, 구는 산속까지 찾아온 빚쟁이들에게 잡혀 낙폭한 폭행을 당하고 길거리에서 죽어갑니다. 그런 구를 끌어안고 겨우 집으로 돌아온 담은 영원히 그와 함께 살기로 결심합니다. 담은 눈물을 흘리며, 구를 기억하며, 영원히 살기 위해 구를 먹기 시작합니다.

사랑이란?

사람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사랑의 모양도 각양각색입니다. 한 순간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맹렬히 식어가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연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 평생 사랑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충만한 사랑을 했노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구와 담이 처했던 궁박했던 삶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구의 증명'을 읽다보면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노력을 다하든, 결과는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궁박함 속에서도 구와 담은 사랑이라는 연꽃을 피웠습니다. 아니, 꽃망울조차 터트리지 못했습니다. 구와 담이 과연 사랑다운 사랑을 나눈 것인지도 의문이 듭니다. 가슴이 너무 아프고 무거워졌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흔히 핑크빛이고 장밋빛이어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의 증명'은 슬픔마저도 넘어서는 그로테스크한 작품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잘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구는 무엇을 증명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담과 구의 연애사가 너무 슬프기 때문입니다.

구의 증명에서 말하는 사랑을 아직 못해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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