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작을 오랜만에 읽어 보았다. 박유경의 <여흥 상사>는 2017년 한경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은 사실 고만고만한 작품들이라 잘 찾지 않았다.
한경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은 "많은 공모전 중에서도 장편소설 부문의 경우, 원고의 볼륨이 우선 두툼하기 때문에 신인들은 소설 안에 반드시 어떤 사건을 넣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기 쉽고, 그러자니 사건은 기본적으로 강력하고 사이즈가 크며 때로는 자극적인 장치로 눈에 띄게 만들어야겠다는 결론도 어렵지 않게 내리게 된다"고 평했다.
2017 한경신춘문예에는 살인과 폭력을 다룬 작품과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를 표방한 작품이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응모작들이 장르의 미덕이라 볼 수도 있는 몰입감이나 흥미를 제공하지는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선작 <여흥상사>도 청소년들의 일탈과 그로 인해 벌어진 살인사건이 소재다. 초반부는 제법 몰입감도 있었다. 등장인물들은 약물을 파는 놀이를 시작하는데, 그들은 이를 '여흥 상사'라 칭했다.
글쎄, 약물을 파는 것이 어떻게 '여흥'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생 넷이 약물을 팔다 그들끼리 싸움이 나고 그중에 한 아이가 살해되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개연성이 있었다.
그러나 살인사건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은 도무지 개연성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한 아이의 아버지가 등장하여 뒤에서 가정부를 조종하여 그 살인사건을 감쪽같이 처리하는데 이건 뭐, 미션 임파서블 수준이다.
그 사건에 연루되었던 주인공 주은이는 간지러운 반점이 목덜미에 생기면서 그 사건을 떠올리게 되나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유부남과의 결혼에 집착한다.
결혼을 앞둔 주은에게 다시 살인 사건에 연루된 아이들이 나타나면서 주인공은 다시 과거로 끌려 들어간다. 옛날 살인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서 기억을 복기하는 과정이 지난하게 묘사된다.
작가는 감춰진 비밀과 개연성을 명료하게 밝히지 않는 것이 스릴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정밀하게 묘사할 능력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마지막, 지루하게 이어지는 장면 묘사는 작가도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쓴 것 같다.
<여흥상사>는 오르지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건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이야기는 초반부에 약간의 흥미를 유발했지만 이내 지루한 사건에 파묻히고 말았다.
"당선작 <여흥상사>는 그중 상대적으로 단점이 작은 소설, 말하자면 극복 가능한 차원의 단점들이 곳곳에 산재한 소설이었다." 심사평 중의 코멘트다. 수많은 응모작들 중에서 그나마 낫다는 이야기다. 소설가 되기의 어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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