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레베카>를 읽고 대프니 듀 모리에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과연 서스펜스 여제의 대표작이라 할 만했다. <나의 사촌 레이첼>을 읽고 작가에게 호기심이 생겨 <레베카>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사촌 레이첼>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서스펜스의 여제'라는 말에 동의하기 어려웠으나, <레베카>를 읽고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하게 되었다. 고급진 양장본의 가치가 충분했다.
번역도 마음에 들었다.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를 예전에 읽었었는데, 이상원이라는 이름이 기억에 남았다. 남자 이름 같지만 여성 번역가이다.
<레베카>의 주인공 '나'의 감성이 나를 잡아끌었다. 그녀에게 가족은 아무도 없었고, 하녀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스물한 살의 '나'는 부끄러움을 많이 탔고, 세상에 맞설 용기도 없었다.
"첫사랑의 열병이 두 번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은 참 다행이다. 시인들이 어떻게 찬양하든 그건 분명 열병이고 고통이기 때문이다. 스물한 살의 나이는 용감하지 못하다. 겁이 많고 근거 없는 두려움도 많다. 쉽게 까지고 상처를 입어 가시 돋친 말 한마디를 견디지 못한다....
"그때는 남이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오래도록 남아 고통스러운 낙인이 되고 어깨너머 뒤돌아본 눈길 하나가 영원히 기억에 꽂히고 마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작은 속임수 하나에도 입술이 마비되어 스스로를 벼랑 끝에 몰아넣고 만다."
<레베카>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몬테카를로의 한 호텔에서 속물스런 노부인의 시중을 들던 '나'는 우연히 아내를 사별한 귀족 맥심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한 달 만에 결혼하게 된다.
맥심은 그림엽서에 나오는 맨덜리 저택을 소유한 귀족이었으므로 나는 맨덜리 저택의 안주인이 된다. 그러나 맨덜리 저택의 하인들은 어찌 된 셈인지 맥심의 전부인이었던 레베카의 질서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었던 '나'는 죽은 레베카가 지배하는 맨덜리 저택의 분위기에 숨 막히는 나날을 보내다 레베카의 죽음과 관련된 비밀과 맞닥뜨린다.
<레베카>는 마지막까지도 반전이 일어나는, 그래서 결국 우리 삶도 마지막까지 불가해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레베카는 자기 멋대로 살았고, 주인공 '나'는 하녀들에게조차 한마디 말도 못하고 세상에 주눅들어 살았다. 아마도 레베카를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를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1940년에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이 영화화하여 그해 아카데미 최고작품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히치콕 영화를 나름 좋아했는데, 아직 <레베카>를 보지 못했다니 안될 일이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다른 소설도 하나하나 읽어봐야겠다. 서스펜스는 특히 단편이 좋다고 한다. 옮긴이 이상원은 <새>, <사과나무>, <푸른 렌즈> 등을 대표적 작품으로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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