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한낙원 과학소설상 수상작과 우수작 6편을 모은 SF 단편 모음집 <푸른 머리카락>(2019)이 출간됐다. 61편의 응모작 중에서 선정했으니 작품 수준은 그런대로 좋다. 전에 읽었던 <독고솜에 반하면>의 작가 허진희의 '오 퍼센트의 미래'가 우수작으로 실려 있어 반가웠다.
SF 소설은 무기력한 나날들을 견뎌내기 위한 도피처가 되었다. 작가들의 신비한 상상력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순간만큼은 아주 조금이라도 현실을 잊을 수가 있어 좋았다. SF 소설을 읽고 리뷰를 쓰는 순간은 우울함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럼, 수상작 '푸른 머리카락'부터 SF 작가들이 창조해낸 상상의 세계를 소개한다.
푸른 머리카락. 남유하
푸른 머리카락의 소재는 여성이 없는 자이밀리언 외계인이 소재인 단편이다. '자궁 약탈자'로 불리는 자이밀리언은 지구 여성과 결혼하고 아내가 임신하면 바다로 들어가 코쿤 상태로 지구인들을 위해 담수를 생산하며 생을 마감한다.
문장도 좋고 이야기 전개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임신을 하게 되면 자이밀리언은 죽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외계인과 결혼할 지구 여성이 과연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근본적인 설정을 빼고 나면 SF 단편으로선 읽을 만하다.
로이 서비스. 남유하
로이 서비스는 가족이 죽고 나면 고인과 거의 완벽하게 똑같은 로봇을 만들어 6개월 간 대여해 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6개월 동안 고인을 닮은 로봇을 통해 이별의 고통을 순화시켜 준다는 아이디어다. 글쎄, 로이 서비스가 섹스 로봇과 다른 지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고등어. 이필원
'고등어'는 UFO가 소재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운동장 위에 나타난 비행물체를 보기 위해 전 세계인들이 용인으로 몰려들지만 소통에는 실패한다. '고등어'는 앞뒤 없는, 재미로 읽을 수 있는 코믹 SF 단편이라고나 할까?
오 퍼센트의 미래. 허진희
평균 수명이 150세, 잘하면 이백 살까지도 인류는 살 수 있다. 그런데 주인공은 예상 수명이 95%의 확률로 55세라는 검사 결과를 받는다. '오 퍼센트의 미래'는 SF 소설이라 칭하기엔 좀 민망한 단편이다. 그리고 SF 소설에서 확률 개념이 없는 카드놀이를 하니 신뢰성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만다.
알람이 고장 난 뒤. 이덕래
계획적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인류는 배꼽시계를 장착하고 캐피탈에서 살아간다. 그 반대편에는 루저빌이라 불리는 곳으로 배꼽시계를 장착하지 않는 인간들이 모여사는 마을이 있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한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나마 SF적 설정이 있는 단편이다.
두근두근 딜레마. 최상아
인간은 유전자 재배열로 자신이 원하는 성격과 외모로 바꿀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거기다 호르몬 한 방이면 상대방을 영원히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약물이 있다. 물론 그것은 불법이다. 주인공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에게 이 약물을 투여할지 고민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상대방을 사랑에 빠트리면 행복할까라는 질문이다.
SF 단편들을 보면 작가들의 상상력 고충을 이해할 수 있다. SF적인 설정과 소재들은 웬만하면 거의 다 나온 셈이다. 약간씩 변주해 쓸 뿐이다. 그래도 문장력이 있으면 재미로 읽을 수 있는 것이 SF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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