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원이 되고 싶어: 젊은 작가상 대상·신동엽문학상 수상 작가, 박상영의 첫 장편소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10대 시절 우리를 할퀴었던 감정들이 기이한 문장들로 되살아난다.
1차원이 되고 싶어(문학동네, 2021)는 한국의 지방 도시 D시를 배경으로 십 대 퀴어 ‘나’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또래 친구 ‘윤도’와의 가슴 저릿한 사랑, 자유분방한 ‘무늬’와 나누는 동경 어린 우정이 ‘나’의 목소리를 통해 생생하게 그렸다.
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에서 작가는 "너무 각별해 차마 직면할 수조차 없었던 시절을 들어다 보는 게 두려웠지만 그 시절을 뛰어넘기 위해, 현재형의 공포를 과거의 한 시절로 남겨놓기 위해 썼으며(···), 소설 속 인물들의 치기 어린 질주로 말미암아 차마 들여다볼 수 없었던 과거의 어떤 시절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면 작가로서 기쁘겠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10대 시절, 두 개의 점을 견고하게 잇는 선분만이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를 지나왔다. 오직 너와 나라는 점이 연결되는 세계. 나는 소설 속 '나'의 그 시절 사랑 이야기에 단숨에 매료되고 여지없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박상영 작가 프로필
2016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두 번째 소설집이자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신동엽문학상을, 2019년 「우럭 한점 우주의 맛」으로 제10회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미국의 출판 전문 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2021년 가을 주목할 작가’에 선정되며 해외에서도 주목받으며, 2022년 대도시의 사랑법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올랐다.
'1차원이 되고 싶어' 빛나는 문장과 감상
"너는 살면서 제일 두려운 게 뭐야?"
나는 매일 밤 침대에 누울 때마다 천장의 네 귀둥이에 서린 그림자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고통에 사로잡히곤 하다가, 얼마나 많은 밤동안 이 천장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야 할지 생각하면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이 막막해진다고 말했다.
"그럼, 우리 1차원의 세계에 머무르자." 네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그게 무슨 뜻이나고 물었다.
"너와 나라는 점, 그 두 개의 점을 견고하게 잇는 선분만이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 말이야." 지금도 방 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면 너를 생각해. 숨 막히게 나를 짓누르던 너의 질량과 그 무게가 주던 위안을 기억해.(130쪽)
삶이라는 무게가 엄청난 질량으로 짓누를 때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소설속 '나'는 대체로 음악을 듣거나 무늬가 알려준 만화를 읽거나 했던 것 같다. '나'의 짝사랑 상대인 윤도는 '나'에게 자신과 '나'라는 점을 잇는 선분만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로 들어오라고 위로한다.
사춘기 게이소년, 게다가 부채더미 속에서도 계속 사고를 치는 아버지와 히스테릭한 어머니와의 삶은 고단하다. 고등학생으로서 유일한 출구는 수능을 쳐서 이 도시를 벗어나는 것.
톨스토이는 <안나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 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고 했다.
사춘기와 불행한 가족의 조합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기에 '나'의 탈출에 대한 욕구와 사랑에 대한 갈망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통통 튀는 대사, 재밌다는 표현을 진부하게 만들어버리는 문장들. 이렇게 빨려들어가면서 읽은 책은 근래에 없다. 방금 겪은 것을 그날 저녁 일기에 남긴 것처럼 생생한 묘사.
그래서 나는 박상영 작가는 그 시절 매일매일 일기를 썼을 것이며 그것을 재료 삼아 이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상상을 해본다. 특히 윤도를 사랑하는 '나'의 감정은 손뜨개질한 것처럼 한 올 한 올 만져진다.
누구나 사랑 혹은 짝사랑의 기억은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날 것 그대로를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심장이 터져 살아가지 못할 거 같다.
작가가 달리 작가겠냐마는. 고통은 잊어버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그래서 잊으려고 부단히 애쓰고 살았는데, 소설은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그 시절과 마주하라고,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우리 가족은 살아오며 서로가 서로를 멀리하는 법을 배웠다. 저마다 세상을 향해 잔뜩 날을 세우고 있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달수록 생채기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나는 오늘의 식사 자리를 겪으며 다시금 다짐하게 되었다. 기필코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떠나고 말 것이라고.(183쪽)
왜지, 왜 이렇게 좋은 거지. 왜 이렇게나 안도가 되는 거지.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거지. 도대체 왜 이렇게 태어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기어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212쪽)
'나'의 불행한 가정과 성 정체성의 혼란한 삶은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스며 독자들의 마음을 흔든다. '나는 나의 부모와 나의 집, 나의 성향과 취향, 나의 말 못 할 비밀과 우울, 내가 혼자임을 버티는 방식, 그러니까 나 자신의 모든 것이 부끄러웠다는 '나'의 독백을 읽으면서 어쩌면 불행한 삶의 이유는 모두 고만고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부끄러움은 사춘기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그 시절에는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은 것들 천지였다. 우리는 어찌어찌 버티어 여기까지 왔고 박상영의 소설을 읽으며 그 시절 느꼈던 부끄러움은 우리가 얼마나 순수했는지를 지금은 얼마나 뻔뻔해졌는지를 깨닫게 된다.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작가의 말에서 다 알려줬고 나는 이 소설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생경한 감정을 다시금 불러와 한때는 우리도 부끄러움을 느끼던 때가 있었노라고, 너무나 절절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었던 소년/소녀였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고 내 나름 결론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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