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마스다 미리의 그래픽 노블을 정주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기 힘든 말>(2015)입니다. 마스다 미리의 작품들은 버티어내고 일상을 조금 부드럽게, 차분하게 돌아볼 기회를 주는 것 같아 좋습니다.
1969년생의 마스다 미리가 들여다보는 일상에는 남다른 섬세함이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하기 힘든 말>을 통해 스스럼없이 선뜻하는 말보다는 오히려 평소 잘 쓰지 않는 말을 통해 그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합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 사는 집
마스다 미리는 일상에서 누구나 쓰는 말들을 통해 그 말이 지닌 미묘한 차이에 의해 그 사람의 심성을 짐작합니다.
일테면 마스다 미리는 "결혼 안 하세요?"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득보다 손실이 너무 많다는 것이지요. 상대방으로부터 쓸데없는 참견을 한다거나 지금 날 떠보겠다는 거야? 라거나 결혼을 하고 싶은데, 상대가 없다는 말을 꼭 내 입으로 들어야 직성이 풀리겠니라는 반응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하기 힘든 말>에는 이처럼 우리가 무심코 상대방에게 툭 던지는 말의 독성을 작가만의 섬세한 감성으로 감별합니다.
말은 그 사람의 성격을 드러낸다.
그리고 저자는 유달리 낯을 가리고 부끄러워고 성격입니다. 일본 술집에서는 계산을 할 때 "어저씨, 정산요"이라고 말을 쓰는 모양입니다. 정산이니 뭐해 허세를 부리면 남들 눈에는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일까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정산보다 마스다 미리는 "요기요, 계산 부탁드려요"가 자기의 얼굴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체크 부탁해요"라는 말도 마스다에게는 불가능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해도 되는 사람은 와인이나 칵테일을 마셔도 아주 자연스러운 사람이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같은 의미로 '서프라이즈 파티'도, '리스팩트', '서플리먼트', '플이어스', '샤프란', '스위트', '레깅스'와 같은 말들도 입에서 쉽게 나오지 않는다고 마스다 미리는 고백합니다. 외래어의 지나친 오남용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별로 차이가 없나 봅니다.
마스다 미리의 <하기 힘든 말>에는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의 인격을 생각하게 하는 일상의 사례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우리들의 말은 자신의 인격이 드러나는 만큼 잘 가려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마스다 미리가 유난히도 낯을 가린다고 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쓴다면 이 바쁜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신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말보다 더 중요한 일이 일상에서 또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말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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