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윤의 <서울 구경>은 짠하고 진한 그래픽 노블이다. 간단히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W와 그의 동생 XX는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형제 둘이 의지하면서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닌다.
M은 W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닌다. XX의 담임 선생님은 W에게 동생이 서울에 있는 아주 좋은 기숙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좋겠다고 안내서를 보내준다. XX는 착하고 공부도 잘했다.
W와 M은 XX도 서울 기숙고등학교에 가는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만화는 시작한다. <서울 구경>을 읽으면 마음이 짠해지고 그들의 진한 이야기에 점점 가슴이 먹먹해진다.
M은 반장과의 좋았던 관계를 생각하며 자신의 인생을 가정해보면 생각해 본다.
"한때는 누군가가 내 세상을 바꿔줬으면 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 삶을 바꿀 기회를 준다면 주었던 걸 다시 뺏어갈 힘도 있을 테고 그 기회를 빌미로 나를 쥐락펴락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만큼이 내 몫이겠지."
그녀를 좋아했던 반장은 서울대 의대에 갔고, M은 W곁에 남았다. W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알바를 하며 XX의 진로를 고민한다. M과 W는 잘되면 같이 식당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십 대의 여성 작가 정재윤은 주인공 이름을 남자는 W로 여자는 M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렇듯 <서울 구경>은 관습적인 서사와는 그 구조가 다르게 진행된다.
W는 M을 만나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 그들은 여느 만화의 주인공처럼 잘나지도 예뻐지도 않다. 지극히 일상적이다. 딱 그들만큼의 생각을 하고 그들만큼의 몫을 산다. 그 이야기들이 진하고 짠하다.
<서울 구경>은 말 그대로 서울에 살지 않는 M과 W, 그리고 XX가 서울에서의 삶에 대한 상상을 풀어놓은 이야기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몫에 충실하면서 서울에 가면 어떨까라는 불안과 고민을 한다.
이야기는 XX가 W의 채근으로 서울 기숙고등학교에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는 버튼을 누르면서 끝난다. XX가 어떤 내용으로 자기 소개서를 채웠을지 궁금증이 생기면서 이야기를 막을 내린다. 작자가 살아온 삶의 방식대로 선택을 하리라는 걸 독자들은 짐작할 것이다.
작가의 데뷔작 <재윤의 삶>에서 "가슴은 태어날 때부터 내 몸에 있을 뿐인데, 가리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도 가슴이 나한테 미안해할 필요는 없지, 너도 내 몸뚱이인데"라고 말했다.
정재윤은 여성의 몸에 대하여, 아니 여성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에 대하여 발언을 주저 없이 한다. 당찰 만큼 용기가 있다. 서울 밖에서 바라본 서울 구경이 아닌, 서울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기대해 본다.
'그래픽 노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스다 미리 '하기 힘든 말', 우리가 쓰는 말이 우리의 얼굴이다 (0) | 2021.04.02 |
---|---|
아무래도 싫은 사람, 마스다 미리의 수짱 완전 공감 이야기 (0) | 2021.03.29 |
요시타케 신스케 그림 에세이,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 (3) | 2021.02.25 |
성별 모나리자인 너에게, 세계관과 1-2권 줄거리 (0) | 2020.03.08 |
고깔모자의 아틀리에 1권 줄거리와 세계관 (0) | 2020.02.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