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 입문서 <더 브레인>(2017)의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서문에서 '삶에서 뇌가 얼마나 중요한지 감안할 때, 나는 왜 우리 사회가 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이토록 드물고 대신에 공공의 전파를 유명인의 사생활과 리얼리티 쇼로 채우는지 의문을 품곤 했다'고 한다.
우리가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 어떻게 세상을 지각하는지,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의 삶이 어떻게 조종되는지, 우리에게 타인들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호기심이 있다면 <더 브레인>을 추천한다.
01 뇌는 어떻게 성장할까?
뇌가 생긴 모양을 보면 호두를 닮았다. 우리의 생각과 꿈, 기억과 경험이 모두 두개골에 밀봉된 1.4킬로그램의 이 이상한 신경물질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에 경외감이 든다.
뇌가 채택한 성장 전략을 보면 신비롭다. 태어날 때 뇌세포의 개수는 약 860억개로 아이나 어른이나 같지만 아기의 뉴런들은 서로 이질적인 채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숨쉬기나 빨기, 울기와 같은 능력들만 고정 배선되어 있을 뿐, 나머지 세부적인 배선도는 세계 안에서의 경험으로 미세 조정케 하는 '생후 배선 livewried' 전략을 뇌는 취한다.
갓 태어난 아기의 뉴런들은 매초 무려 200만 개의 새로운 연결, 시냅스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두 살쯤에 성인이 가진 시냅스의 두 배인 100조 개에 이르며 최대치가 된다.
이 시점에서 신경학적 '가지치기'가 새로운 전략으로 채택된다. 사춘기 때 다시 과잉생산 시기를 제외하면, 25세까지 시냅스들의 50퍼센트까지 제거되는 과정이 지속된다. 뇌의 발달은 유년기에 거의 다 완료된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오늘날 인간 뇌의 형성 과정은 25세까지 계속된다고 알려졌다.
유년기 동안의 국소적 환경이 우리의 뇌를 다듬는 과정이 진행되는데, 회로에 성공적으로 참여하는 시냅스는 강화되고 반대로 불필요한 시냅스는 약화되고 결국 제거된다. 가능성들의 밀림이었던 뇌가 환경에 적합한 모습으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뇌 속 연결들은 더 적어지고 더 강해진다.
25세가 되면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뇌 형성이 완료된다. 정체성과 성격에 관한 구조적 변화들은 이미 끝났고, 우리의 뇌는 완전히 발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인기에도 우리 뇌는 계속 변화하며 가소성을 가진다. 경험은 뇌를 변화시키고, 뇌는 그 변화를 보존한다.
02 우리의 정체성은 어떻게 생겨날까?
뇌의 이랑들과 고랑들의 전반적인 모양은 개인차가 없다. 그러나 더 미세한 세부 사항들은 당신이 이제껏 어디에 있었으며 지금 누구인지를 개인적이며 유일무이하게 반영한다. 모든 경험은 당신 뇌의 물리적 구조를 바꾸고 흔적을 남긴다. 이 지워지지 않는 않는 미시적 각인들이 모여서 지금의 당신을 만들고 미래의 당신을 제약한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뇌와 몸은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조금씩 변한다. 예컨대 당신의 적혈구들은 4개월마다, 피부세포들은 몇 주마다 완전히 교체된다. 약 7년이 지나면, 당신의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가 다른 원자로 교체될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당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당신이다.
다행스럽게도 다양한 당신의 버전들 모두를 연결해주는 상수가 하나 있다. 바로 기억이다. 기억은 당신의 정체성의 핵심에 자리를 잡고 단일하며 연속적인 자아감을 제공한다.
03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지각할까?
믿어지지 않지만, 우리가 매일 보고 듣는 세상은 색깔이 없을뿐더라 소리도 없고, 냄새 따위도 실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바깥 세계에는 광자와 전자기파와 공기의 압축과 팽창, 분자들의 농도들이 마구 뒤섞인채로 실재할 뿐이다.
감각기관들(눈, 귀, 코, 입, 피부)의 수용기가 그 정보를 감지하여 뇌에서 통용되는 정보인 전기화학적 신호로 번역하게 되면, 그 신호들은 조밀한 뉴런들의 연결망을 쏜살같이 달리게 되고, 뇌는 그 신호들을 광경이나 소리, 냄새로 가공하여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으로 해석하여 우리에게 보여준다.
저자는 당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광경, 소리, 냄새)은 직접 경험이 아니라 캄캄한 극장 안에서 펼쳐지는 전기화학적 연극에 비유한다.
특이한 것은 이 과정에서 우리 뇌가 에너지 효율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내부 모형 internal model'을 활용하여 신속하게 외부 세계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뇌는 받아들인 감각 정보 가운데 세부 사항은 배제하고 이미 구성해 놓은 내부모형과 비교하면서 그 모형을 갱신하고 다듬고 수정한다. 이는 완전하다고 믿었던 기억이 실은 엉성하다는 것과도 연결된다.
04. 무의식은 어떻게 작동할까?
뇌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들을 담당할 회로를 형성하여 걷기나 파도타기, 자전거 타기, 저글링, 운전을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해 준다. 장기 기억 중의 하나인 '절차 기억 procedural memory'이 그것이다.
자전거 타기를 충분히 배우고 나면 그 기술은 하드웨어가 되면서 의식적 통제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러면 우리는 과제를 생각(의식적 자각) 없이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어떤 기술들은 담당하는 회로가 뇌보다 더 낮은 층위인 척수에서 발견될 정도로 솜씨의 하드웨어화가 철저히 이루어진다.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십 가지 미세조정에 관한 계산을 어떻게 하는지, 당신의 혀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정확한 발음을 어떻게 산출하는지 우리는 전혀 모른다.
이렇게 뇌 구조에 프로그램을 새겨 넣는 능력은 뇌의 가장 강력한 묘수들 중 하나다. 뇌는 복잡한 운동 과제를 전담하는 회로를 하드웨어에 새겨 넣음으로써 자동 조정 장치로 그 과제를 아주 적은 에너지만 써서 수행할 수 있게 해주고 남은 자원은 다른 과제들을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자동화된 솜씨에 의식적으로 개입하려는 시도는 대개 실적을 악화시킨다. 숙달된 기술은, 매우 복잡한 기술이라 하더라도, 고유한 장치에 맡길 때 가장 잘 발휘된다. 많은 경우에 의식은 구석으로 물러나 있는 것이 최선이다. 왜냐하면 무의식적 뇌는 의식적 정신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05. 우리는 어떻게 선택할까?
당신은 점심으로 자장면과 짬봉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는가? 오늘 자장면을 먹었으면 내일은 짬뽕으로 선택하는 스타일인가 아니면 쭉 자장면으로 일관성 있게 가는 스타일인가? 아니면 짬자면 스타일인가?
우리가 자장면과 짬봉의 선택에 직면할 때, 뇌 속 각각의 뉴런들은 재빠르게 거대하고 복잡한 자장면 연결망과 짬뽕 연결망을 만들어 서로를 흥분 시키거나 억제하는 화학물질들을 방출하면서 자신의 활동을 강화하고 상대의 활동을 억제함으로써 우위를 점하려고 애쓰게 된다.
양쪽은 이 승자독식의 경쟁에서 한쪽이 승리할 때까지 싸운다. 승리하는 연결망이 당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컴퓨터와 달리 뇌는 다양한 가능성들 사이의 분쟁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를 데이비드 이글먼은 뉴런 의회라고 불렀다. 우리 뇌의 뉴런 연결망들이 작동하는 방식이 정치판을 닮았다는 뜻이다.
06.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유
뇌는 보상 시스템에 의해 과거 경험과 현재상태, 그리고 미래 예측을 가늠하여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잘못된 선택지를 고르고 만다. 우리 뇌가 미래 예측을 똑바로 했다면 비만이나 흡연, 알코올 중독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당장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를 우리가 그저 시뮬레이션하는 선택지보다 더 높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식탁 위에 놓인 맛있는 음식은 즉각적 만족을 욕망하는 뉴런 연결망들을 완벽하게 활성화시킨다.
뇌의 입장에서 미래는 언제나 현재의 희미한 그림자일 수밖에 없다. 당신의 정신적 시뮬레이션은 지금 여기에서 당장 하는 경험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가 바로 미래에 관한 결정을 잘 못 이끄는 범인이 된다.
그렇다면 유혹을 견디고 중독에서 바져 나오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오디세우스 계약'을 활용하라고 권한다. 오디세우스는 세이렌 섬을 지날 때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었다. 알코올자 중독자 모임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도 술병들을 모두 치우는 것이다.
오디세우스 계약의 핵심 전제는 우리가 맥락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더 나은 결정을 하려면, 당신 자신을 아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당신 자신들을 모두 아는 것이 중요하다.
07. 인간에게 타인이 필요한 까닭
인간의 생존은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 신속하게 판단하는 것에 의존한다. 타인들의 의도를 판단함으로써 사회적 세계에서 길을 찾는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사회적 판단을 한다.
흔히 사람들은 우리가 타인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법을 여러해에 걸친 인생 경험에 기초하여 학습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뇌는 누가 신뢰할 만하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 탐지하는 본능을 타고난다.
그 본능에 의하여 삶의 모든 순간에 뇌 회로는 극도로 미묘한 표정 단서들에 기초하여 신속하고 자동적으로 타인들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해독한다.
'거울 효과 mirroring'는 타인의 감정을 해독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람의 얼굴 근육은 감정을 반영한다. 뉴런 장치는 타인의 얼굴 근육을 무의식적으로 신속하게 자신의 얼굴에 흉내 내봄으로써 타인의 감정을 알아챈다. 이것은 타인을 더 잘 이해하고 타인이 어떻게 행동할지 더 잘 예측하기 위해 사용하는 강력한 장치다.
'통증 매트릭스 pain matrix'도 마찬가지 원리로 작동한다. 타인의 고통을 보면 신속하게 통증 매트릭스가 활성화되면서 공감이 일어난다. 통증 매트릭스 덕분에 타인의 감정을 더 잘 파악하고 다음 행동을 더 잘 예측하게 된다. 진화적 관점에서 통증 매트릭스는 우리가 타인들과 연결되는 방식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하는 공감의 토대가 된다.
놀이에서 따돌림을 받아도 통증 매트릭스가 활성된다. 이는 사회적 연대(진사회성 eusociality)가 진화의 관점에서 중요함을 시사하는 단서다.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만으로 집단이 구성되면 그 구성원들은 더 안전하고 더 생산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브레인>의 마지막 장, '미래에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될까?'는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와 <사피엔스>에서 다루었던 사이보그의 압축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우리 종은 우리 자신의 운명을 주무를 수단을 발견하는 중이다. 언젠가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종으로 진화해 갈지도 모른다. 책을 덮을 때 우리 뇌에 대한 경외감이 더 깊어졌다.
'책 읽는 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 계발]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장원청 (10) | 2020.04.19 |
---|---|
[처세술] 서른 전에 한 번쯤은 심리학에 미쳐라, 웨이슈잉 (3) | 2020.04.18 |
기시미 이치로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 (8) | 2020.04.04 |
B급 전성시대, 김은식의 B급 자기 계발서 (4) | 2020.03.30 |
김얀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 이상한 여행기 (5) | 2020.03.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