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고 있다. 비 오는 주말, 심리학이라는 타이틀을 단 두 권의 책을 읽었다. 공교롭게도 두 권 다 중국인이 쓴 책이었다. 한 권은 어제 포스팅한 <서른 전에 한 번쯤은 심리학에 미쳐라>이고, 한 권은 장원청의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이다. 각각 올해 2월과 3월, 우리나라에 번역 출판됐다.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마음의 텃밭에 오늘처럼 비가 내릴 때, 심리학 관련 책을 찾는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서른 전에 한 번쯤은 심리학에 미쳐라>는 내가 찾던 책이 아니었다. 심리학 비전공자가 쓴 처세술에 관한 책이었으니 실망이 컸다.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도 마찬가지였다. 심리학과 처세술을 짬뽕시킨 책이었다. 책의 많은 부분이 처세술 관련 책에서 인용한 내용들로 뒤덮여 있었는데, 원 저작자들에게 허락을 받고나 전재한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특히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의 인관 관계론>의 일화들은 무더기로 인용돼 있었다.
이 책은 무려 75가지의 심리 법칙을 소개한다. 1~2쪽당 한 심리법칙 한 개를 소개하다 보니 수박 겉핧기씩으로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거기다 잡다한 에피소드나 일화를 곁들여 설명하는 방식을 취해 꼭 몇십 년 전의 구닥다리 책을 보는 느낌이다. 차라리 깨끗한 심리 법칙 사전이 더 나을 듯했다.
그래도 책을 읽었으니, 적어도 한 가지는 건져야 한다는 '본전심리'가 발동했다. 이 책에서는 소개하지 않았지만, 경제학이나 심리학계에서 말하는 콩코드 오류(Concored fallacy) 혹은 매물 비용(sunk cost) 효과다.
(1969년에 개발된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는 개발초기부터 경제성 없는 사업이라는 분석이 제기되었지만 폭발사고로 엄청난 인명손실을 겪고 나서야 2003년 운행 중단되었다.)
사람들은 본전(투입된 비용, 노력, 시간) 때문에 기존 선택을 끊임없이 정당화하고 추가 비용과 노력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지금 이 포스팅도 그렇다. 그저 그런 책을 읽었으면, 이런 책도 있었군 하고 가볍게 넘어가면 그만인데, 리뷰를 하자니 문제가 생긴다.
암튼, 이 책에 나오는 재미있었던 일화를 소개해야 심리적으로 개운할 것 같다. '뷔리당의 당나귀'라는 꼭지에 나오는 인도에서 전해진다는 우스운 이야기이다.
고대 인도에 뛰어난 지혜로 많은 여성의 환심을 사는 철학자가 있었다. 어느날 아름다운 여성이 그의 집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저를 당신의 아내로 받아주세요! 나를 놓치면,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여자는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철학자는 몹시 당황하며 "고려해보겠습니다"라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철학자가 결혼과 비혼의 장담점을 따로따로 나열해 보니, 두 가지 선택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모두 균등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고민에 빠졌다. 결국, 그는 선택에 직면해 어느 쪽을 정할 수 없을 때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철학자는 여성의 집으로 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따님은 어디 있습니까? 따님에게 전해주세요. 저는 따님에게 장가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냉담하게 대답했다. "자네 10년이나 늦게 왔네. 내 딸은 이미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
'뷔리당의 당나귀'는 14세기 프랑스 철학자 J. 뷔리당이 제기한 이성적 선택의 역설에서 유래되었다. 양과 질이 똑같은 건초 두 더미 사이에 있는 이성적인 당나귀는 선택을 하지 못해 결국 굶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망설임 없이 전광석화처럼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소문이 날까? 그것은 아마도 상황과 맥락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닐까? 바보처럼 어떤 법칙이나 효과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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