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언제 읽어도 강렬하고 여운이 오래 남는다. 소설가 샬럿 브론테의 비극적인 생애와 맞물려 오늘도 어디선가 그 고독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제인 에어>는 샬럿 브론테가 커러 벨이라는 중성적 필명으로 1847년 발표한 작품이다. 당시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의식해 브론테가의 세 자매는 모두 자신들이 여성임을 숨기기 위해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19세기 가부장적인 영국 사회에서 발표된 <제인 에어>는 최초의 여성 성장 소설로 평가받지만, 개인적으로는 성장 소설이라기보다 연애 소설에 더 방점을 찍고 싶다.
아주 어려서 고아가 된 제인 에어는 외숙모와 그 남매들에게 냉대를 받다 자선학교 로우드 학교에 보내진다.
로우드 학교는 전염병이 돌아 40여 명의 학생들이 죽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지만 템플 교장선생님과 헬렌 번즈와 친구가 되면서 비로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용기를 쌓기 시작한다.
제인 에어는 템플 선생님이 결혼하여 학교를 떠나자 자신도 로체스트 가에 가정교사 자리를 얻어 떠난다. 제인 에어는 로체스트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 서약 직전, 로체스트에게 숨겨진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 폭로된다.
로체스터의 숨겨진 아내 버사 메이슨이 등장하는 과정은 고딕 소설의 전형을 따른다. 기괴하고 음침하여 소름이 돋는다. 미치광이 버사 메이슨은 후대에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이 되었다.
로체스트가 미치광이 버사 메이슨을 왜 저택에 가두어 학대를 하면서도 이혼은 하지 않았는지, 제인 에어에게는 왜 비밀에 부쳤는지, 제인 에어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도 왜 로체스트를 떠났는지는 미심쩍은 부분이다.
아무튼 제인 에어는 로체스트의 정부가 될 수는 없다며 도망치듯 떠나고, 우여곡절 끝에 세인트 존 리버스와 그 여동생들을 만나 구사일생한다.
리버스 남매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제인 에어는 세인트 존이 청혼을 하지만 그의 청혼을 경멸하며 다시 로체스트에게 돌아가고 만다. 그가 제인 에어를 사랑이 아닌 선교사 아내라는 도구로 봤기 때문이다.
제인 에어는 대저택 화재사고로 두 눈의 시력을 잃고 한 팔을 잃은 로체스트를 만나 기꺼이 평생 그의 눈과 손발이 되겠다며 결혼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결국 <제인 에어>는 가난한 고아였던 소녀가 온갖 역경을 딛고 가정교사로 들어갔던 대저택의 주인과 결혼에 성공한다는 통속 로맨스 소설과 다를 바 없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줄거리만 보면 제인 에어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했다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그녀는 연인 로체스터를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그러나 <제인 에어>가 지금으로부터 173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제인 에어는 얼굴도 예쁘지 않았고 몸매도 볼품없었다. 그리고 불같은 성격에 고집이 셌다. 현대의 많은 소설가들도 여자 주인공의 외모를 묘사할 때 '예쁘다'와 '섹시하다'는 점을 은연 중 어필한다.
그런 부류의 작가들은 첨단의 이 시대에도 예쁨 받는 것을 떠난 여성성을 생각조차 못한다. 여류 작가들조차 그렇다.
샬럿 브론테는 그런 여성성을 그녀의 소설에서 과감히 지웠다. 대신 여자로서 산다는 것과, 여자로서 사랑한다는 것을 깊이 고민했다. 빅토리아 시대에서 제인 에어 같은 소녀는 도대체가 나올 수 없는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그녀 역시 교사 시절 유부남 교장을 사랑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제인 에어를 통해 그녀의 사랑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로체스터를 불구로 만든 다음에야 제인 에어를 그에게 돌아가게 만든 건 여전히 괘씸하지만 말이다.
사랑은 지금도 진보 중이다. 여성과 남성을 떠나 사랑의 최종 목적지는 거의 대개 '결혼'을 비껴가고 있다. 여성으로서 산다는 것과 여성으로서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오늘의 제인 에어는 로체스트를 사랑할 수 있을까.
* 크레올이었던 진 리스는 버사 메이슨 시점에서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라는 소설로 제인 에어를 다시 썼고, 영화화된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 <카리브 해의 정사>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지만 작품성은 꽝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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