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은 열네 살 고아 소년 모모가 자신을 키워준 로자 아줌마가 나이들고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는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입니다.
로맹 가리는 1956년 발표한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하였고,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두 번째 공쿠르 상을 수상했습니다.
한번 수상한 작가에게는 수여하지 않는 프랑스 최고 권위 공쿠르상은 신인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우수한 소설 작품을 뽑아 수여하는데 프랑스의 아카데미 공쿠르가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로맹 가리는 전무후무하게 공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로맹 가리의 생애
로맹 가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1914년 5월 8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로망 카시유. 그의 부모는 그가 태어난 직후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로맹 가리를 데리고 유럽을 전전하다 프랑스 니스에 정착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들만큼은 왕자로 키웠습니다.
조숙했던 로맹가리는 열아홉 살 되던 해인 1933년, <죽은 자들의 포도주>를 투고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유 프랑스에 가담하여 공군으로 복무했습니다. 1935년, 첫 소설 <폭풍우>를 발표하고 1941년부터 1961년까지 외교관이 되어 불가리아, 스위스, 볼리비아, 미국 주재 프랑스 총영사를 지냈습니다.
1944년에는 런던에서 <분노의 숲>을 발표하고 <보그>지의 편집자였던 일곱 살 연상의 레슬리 블랜치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1959년, 할리우드에서 당시 21세였던 영화배우 진 세버그를 만나 첫눈에 반한 로맹 가리(45세)는 후에 임신한 진과 함께 파리로 돌아와 정착합니다. 레슬리와는 16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진과의 사이에서 아들 디에고를 두었습니다.
* 진 세버그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걸작 <넷 멋대로 해라>(1959)의 주연을 맡으며 세계 영화계의 요정이 되었습니다. 짧고, 굴곡 많았던 진 세버그의 삶은 네 번 결혼을 하고, 블랙팬서의 지지로 FBI의 공적이 되었습니다. 딸을 출산하였으나 이틀을 넘기지 못한 탓에 진은 여러차례 자살 기도를 했습니다.
결혼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던 1968년, 로맹 가리와 진은 각방을 쓰는 별거에 들어가고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와 <죄 지은 자>를 발표하고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합니다.
1979년 9월 8일, 진 세버그가 실종 10일만에 그녀의 주검이 자동차 뒷좌석에서 발견되고, 로맹 가리는 9월 10일 아들 디에고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1970년 당시 진 세버그가 흑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중상모략하여 그녀를 정신병으로 몰고 갔다는 이유로 미연방수사국을 고발합니다.
진이 세상을 떠난지 3개월도 되지 않은 1980년 12월 2일, 몇 달 동안 집필을 중단해오던 로맹 가리는 권총을 입에 넣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는 <열렬한 포옹>(1974), <자기 앞의 생>(1975), <가명>(1976), <솔로몬 왕의 고뇌>(1979)를 남겼습니다.
소설 자기 앞의 생 등장인물
모모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이자 화자입니다. 본명은 모하메드이지만 사람들은 어린애 취급해서 항상 '모모'라고 부릅니다. 모모는 세살 무렵부터 프랑스 벨빌의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모모는 열 살이라고 알고 자랐지만 훗날 열네 살이라는 걸 극적으로 알게 됩니다.
로자 아줌마
폴란드 태생인 로자 아줌마는 몸을 파는 일로 살아왔습니다. 파리의 푸르시 거리, 블롱델 거리, 시뉴 거리를 전전했고, 그 밖에 여러 곳을 거쳐 모로코와 알제리에까지 갔지만 일이 꼬여 다시 파리에 돌아왔습니다.
독일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후에도 몇 년간은 몸을 팔아 먹고 살았으나, 오십 줄에 들어서고부터는 벨빌의 비숑 거리에서 매춘부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로 먹고 살고 있습니다.
예순다섯 로자 아줌마는 구십오 킬로그램의 거구로 칠층 건물을 한 번에 오르기에도 버거운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밀 할아버지
알제리에서 온 여든다섯 하밀 할아버지는 평생을 양탄자 행상으로 세상을 떠돌았지만 지금은 모모와 같은 동네 벨빌에서 정착해서 살고 있습니다. 하밀 할아버지는 양탄자를 팔고 로자 아줌마는 몸을 팔던 시절부터 둘은 삼십 년을 알고 지내온 사이입니다.
하밀 할아버지는 눈이 아주 아름다워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입니다. 젊었던 시절에 사랑했던 한 처녀를 육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로맨티시스트 할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고작 여덟 달 만에 끝장이 난 사랑을요.
또 젊었을 때 여행했던 나스의 해변과 미모사, 종려나무 숲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룰라 아줌마
세네갈에서 권투 챔피언이었지만 남자로 사는 것이 불행하여 프랑스에서는 여장남자로 블로뉴 숲에서 몸을 팔며 살고 있습니다.
룰라 아줌마는 천사와도 같이 모모를 좋아하고, 모모도 룰라 아줌마를 좋아하는 사이입니다. 룰라 아줌마는 엉덩이로 번 돈으로 로자 아줌마와 모모를 물심양면, 돕습니다.
카츠 선생님
비쇼 거리의 유대인과 아랍인들 사이에 기독교적 자비심을 베푸는 의사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모모는 카츠 선생님을 좋아하면서도 안락사를 반대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어 대들기도 합니다.
나딘 아줌마와 라몽 아저씨
스무다섯 살 나딘 아줌마는 영화의 등장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불어넣어주는 일을 하는 아주 예쁜 아줌마입니다. 나딘 아줌와 함께 사는 라몽 아저씨는 사려 깊은 의사 아저씨입니다.
나딘 아줌마와 라몽 아저씨는 훗날, 로자 아줌마가 죽고 홀로 남은 모모를 시골 별장에서 보살펴줍니다.
자기 앞의 생 줄거리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칠층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보살피고 있는 예닐곱명의 매춘부의 아이들과 함께 사람들이 '은밀한 집'이라고 부르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고아가 대개 그렇듯이 모모는 자신의 부모도, 정확한 나이도 모른채 열 살이라고만 알고 자랍니다. 어느 날 모모는 잿빛 털이 곱슬거리는 푸들 한 마리를 훔쳐왔는데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쉬페르'란 이름 붙인 그 푸들에게 자신이 살고 싶었던 멋진 삶을 선물하고 싶었던 모모는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줌마에게 오백 프랑을 받고 푸들을 넘깁니다.
받은 오백 프랑을 하수구에 처넣어버리고는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두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송아지처럼 울게 됩니다.
모모는 또 하밀 할아버지를 만나러 카페에 자주 갑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책을 늘 손에 쥐고 있는 하밀 할아버지는 모모에게 둘도 없는 말동무입니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하밀 할아버지의 말은 모모가 자기 앞에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아무래도 그 시절 가장 좋은 친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모가 옷을 해 입힌 우산, 아르튀르였습니다. 모모는 노란색 헝겊으로 우산 손잡이를 공처럼 둥글게 감싼 뒤 로자 아줌마의 붉은색 립스틱을 사용하여 동그란 눈과 다정하게 미소 짓는 입을 그려 넣고 피갈거리나 블랑슈 거리에서 어릿광대로 용돈을 벌기로 합니다.
자기 앞의 생 결말
어느날 모모가 '민족적 대재난'이라고 명명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모모를 낳자마자 아내를 살해한 모모의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다, 14년 만에 나타났지만 모모의 눈앞에서 횡설수설하다 죽고 맙니다.
모모는 드디어 자신이 1956년 10월 7일생란 걸 알게 됩니다. 작중 시점이 1970년이었으니 모모는 열 살이 아니라 열네 살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네 살을 더 먹었다는 사실에 모모는 위안을 삼으며 어른에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1956년생이니까, 모모는 아직 우리 곁에 할아버지로 우릴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로자 아줌마는 치매 증상이 점점 심해지며 가사상태에 자주 빠집니다. 카츠 선생님은 로자 아줌마가 위중하니 잠시라도 크고 넓은 병실에서 간호를 받아야 한다며 구급차를 부르려 합니다.
로자 아줌마와 모모는 사람이 식물처럼 살 수는 없다며 안락사를 요청해보지만 카츠 선생님은 불법이라며 하루빨리 병원에 입원할 것을 종용합니다.
병원에는 데려가지 않겠다고 로자 아줌마와 약속한 모모는 순간적으로 묘안을 떠올립니다. 아파트 건물 지하실에 로자 아줌마가 만든 유태인 동굴로 밤 열 시가 넘은 시각에 그녀를 데리고 갑니다. 다음 날, 로자 아줌마는 숨을 거두고 모모는 숨진 로자 아줌마 몸에 향수를 뿌리고 색조 화장품으로 그녀의 얼굴을 칠해줍니다.
사람들이 진동하는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문을 부수고 들어왔을 때, 그녀 옆에 누워 있는 모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구급차에 태워져 나딘 아줌마 시골 별장으로 가게된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해설
모모를 아껴주었던 로자 아주머니와 하밀 할아버지, 카츠 선생님들은 모모가 만났을 때부터 꽤나 늙어 있었고, 그 후로도 계속 늙어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모는 자신을 보살펴준 로자 아줌마의 죽음을 통해 자기 앞에 남겨진 생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의 원제는 프랑스어로 "La vie devant soi", ‘앞으로 남은 생’을 뜻합니다.
모모가 자기 앞에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아마도 이 소설을 읽으신 분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그 방향을 혜아리며 모모를 응원하리라 생각되어집니다.
나딘 아줌마와 라몽 아저씨가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산다는 것에 대해 도대체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고 말한 모모의 말처럼 나 역시 산다는 것에 대해 도대체 아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앞의 생>을 애독하는 거겠지요.
요즈음은 엉덩이가 아닌, 얼굴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시대가 된 거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든 과한 친절과 값싼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아득해지곤 합니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에 대한 애도를 아주 혹독하게 치루고 난 뒤에야 겨우 자신의 앞에 남겨진 생에 대해 나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모에게 로자 아줌마는 그런 존재였고,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이 내게는 그런 작품입니다.
자기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기 앞의 생>은 모모 삶의 불운과 굴곡을 통해 그 결을 우리앞에 선명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모모는 비록 열네 살에 불과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어떤 정성을 쏟아야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모모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기 앞의 생> 명언 & 명대사
또 하나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것은, 그녀가 엘리베이터 하나쯤은 갖추어진 아파트에서 살 만한 자격이 있는 여자라는 점이다.(9쪽)
"모하메드, 너를 낳아준 사람이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너 자신 뿐이란다."(46쪽, 하밀 할아버지가 모모에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이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믿게 되고, 또 살아가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61쪽, 모모가 은다 아메데 씨에 대한 생각)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69쪽 로자 아줌마가 모모에게)
그는 매춘부들에게는 마음의 눈이 있다고 했다. 완전희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오랜 산 경험에서 나온 말이란다.(93쪽, 하밀 할아버지가 모모에게)
하밀 할아버지는 인정이란, 인생이라는 커다란 색 속의 쉼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로자 아줌마가 유태인의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볼 때면 그것은 쉼표가 아니라, 차라리 인생 전체를 담은 커다란 책 같았고, 나는 그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114쪽, 로자 아줌마가 병색이 점점 깊어갈 때, 절망한 모모의 생각)
"모모야, 항상 명심해라. 엉덩이는 말이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 중 가장 신성한 것이란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야.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그런 짓은 하면 안 된다. 내가 죽더라도, 그리고 네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엉덩이뿐이라고 해도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말아라."
"알아요, 아줌마. 그건 여자들의 직업이에요. 남자는 존경받는 직업을 가져야죠"(150-151쪽,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대화)
"모모야, 너도 크면 알게 되겠지만, 아무 의미도 없으면서도 존경받는 외부적인 표시가 있단다. 예를 들면 고환 같은 거 말이다. 그건 조물주의 실수로 만들어진 거란다."(159쪽, 룰라 아줌마가 모모에게)
룰라 아줌마는 매춘부라는 직업도 점점 한물가고 있다고 했다. 그건 무료로 그 짓을 하는 여자들이 늘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67쪽)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그것은 프랑스의 것이 아니었다. 하밀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기를,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174쪽)
로자 아줌마는 어디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았고,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위조 서류들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는 그는 사회보장 연금도 받지 못했다.(189쪽)
"내 엉덩이를 삼십오 년 동안 손님들에게 내주었는데, 이제 와서 또 의사들에게 내주고 싶지는 않아. 약속해주겠지?"
"약속해요"
"카이렘?"
"카이렘"
카이렘, 유태어로 '당신에게 맹세한다'란 뜻이다.(202-203쪽,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대화)
아주 못생긴 사람과 살다 보면 그가 못생겼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정말로 못생긴 사람들은 무언가 결핍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228쪽, 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생각하며)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산다는 것에 대해 도대체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블랑슈 거리에서 뚜쟁이 노릇을 하며 약간의 용돈을 벌었던 이야기도 해주었다.(247쪽, 모모가 나딘과 라몽에게 들려준 이야기)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252쪽, 모모가 엄마에 대해 생각하며)
"무서워..."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잖아요."(253쪽, 모모가 로자 아줌마에게)
"선생님,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절대 없어요."(267쪽, 모모가 카츠 선생님에게)
아무리 고생을 많이 했노라 자부해도 사람에겐 여전히 배워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293쪽, 모모가 유태인 동굴을 만들어놓은 로자 아줌마를 생각하며)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별의별 생각을 다하는 법이다.(297쪽)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307쪽)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자기 앞의 생 마지막 문장)
영화 <자기 앞의 생>에 대하여
소피아 로렌이 주연으로 출연한 <자기 앞의 생>(2020)이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을 때 지인은 모모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며 영화 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첫사랑을 만나보고 싶지 않다는 감성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저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타입인지라 기어코 영화를 보고야 말았는데, 아~,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자기 앞이 생>을 아끼는 애독자라면 이 영화는 보시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인이 전적으로 옳았습니다. ㅠㅠ
영화 <자기 앞의 생>은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기보다 완전히 재해석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까요? 재해석도 잘했으면 좋았는데, 설정도 완전히 바꾸고 왜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모모의 이미지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음을 추슬러서 영화 <자기 앞의 생>에 대한 영화 리뷰 글을 올리겠습니다.
아직까지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들에게, 그리고 모모를 사랑해온 애독자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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