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소설

김소연 시집 "수학자의 아침" 삼각형과 선분, 원주율의 세계

by essay™ 2021. 8. 2.

수학은 한없이 비정한 세계다. 참과 거짓 외에는 그 어떤 불순한 세력도 진입을 허락지 않는다. 너무나 드라이해서 감성이 자랄 영토는 없다.

그런데 시인 김소연은 수학을 매개로 시를 썼다. 그래서 <수학자의 아침>은 귀한 시집이다.

김소연 시인은

1993년 <현대시사상>에 '우리는 찬양한다'로 시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등단 후 <극에 달하다>와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등 세 권의 시집을 냈다. <수학자의 아침>은 네 번째 시집이다. 산문집에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이 있다. 노작문학상(2010)과 현대문학상(2012)을 수상했다.

시인 김소연이 수학을 전공했는지는 알 수는 없으나 <수학자의 아침>에 실린 시들로 보아 아마도 수학은 전공하지 않은 것 같다. 청춘기에는 누구나 수학을 탐한다. 지고지순하고 그 무결한 그 세계를, 참이 될 때까지 무한히 증명할 수 없으면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그 완전한 세계를, 시인도 아마 그랬을 것 같다.

시집의 처음, 시인의 말에서 김소연은 "애도를 멎게 하는 자장가가 되고 싶다."고 썼다. 뭔가 슬픔이 몰려오는 듯도 하다.

평론가 황현산도 "너의 새 시집이 슬픔으로 가득하구나(···) 그 지금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아서, 혹은 갑자기 와버릴 것 같아서 슬프다. 너는 한 줌 물결로 바다를 연습하는데, 그 바다가 옛날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까 봐 슬프고, 어쩌면 거대한 물 한 덩이가 무덤덤하게 눈앞에 누워 있을까 봐 슬프다. 너의 지금은 네가 가장 깊은 슬픔으로 짠 시간이기에 슬프다."고 감상적인 발문을 붙였다.

김소연 시집 수학자의 아침 책표지

수학자의 아침

그러나 나에게 <수학자의 아침>은 슬프게 다가오지 않는다. 슬픔에 익숙해져버린 족속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단지 수학자의 아침으로서 시인 김소연의 시들을 읽었다. 그렇기에 슬프지 않다. 시 또한 어쩌면 수학처럼 비정한 세계일 것이므로.

수학자의 아침

나 잠깐만 죽을게

삼각형처럼

 

정지한 사물들의 고요한 그림자를 둘러본다

새장이 뱅글뱅글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겨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안겨 있는 사람을 더 꼭 끌어안으며 생각한다

(···)

나 잠깐만 죽을게

단정한 선분처럼

 

수학자는 눈을 감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숨을 세기로 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간격의 이항대립 구조를 세기로 한다

(···)

잠깐만 죽을게

어디서도 목격한 적 없는 온전한 원주율을 생각하며

 

사람의 숨결이

수학자의 속눈썹에 닿는다

언제가 반드시 곡선으로 휘어질 직선의 길이를 상상한다

 

시인은 불멸의 삼각형의 세계에 단정한 선분처럼 잠깐만 죽을게라고 노래한다. 어디서도 목격한 적 없는 온전한 원주율을 생각하면서.

원주율은 무리수이자 초월수이다. 소수점 아래 어느 자리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순환마디도 없이 무한히 계속되는 비순환 소수이다. 그렇기에 원주율은 이 세상에 실재로서 존재할 수 없다. 다만 수학의 세계에서 개념으로 먹고사는 존재다.

시인 김소연은 어디서도 목격한 적 없는 온전한 원주율을 그리워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간격의 이항대립 구조를 세면서 불멸을 꿈꾼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으로서 애초에 불가능한 꿈이다. 그래서 안겨 있는 사람을 더 꼭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사람의 숨결이 수학자의 속눈썹에 닿기를 원한다. 직선은 중력의 힘에 굴복하여 언제가 반드시 곡선으로 휘어지기 마련이므로. 그것이 인간이 사는 세상의 이치일 것이므로 시인은 곡선이 될 직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사랑과 희망의 거리

 

사랑과 희망의 거리

 

우리는

서로가 기억하던 그 사람인 척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장난감의 세계

같은 장소에 다시 찾아왔지만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가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없었던 것들이 자꾸 나타났고,

있었던 것들이 자꾸 사라졌다 이를테면

시, "사랑과 희망의 거리"에서 시인은 서로가 기억하던 그 사람인 척하기 위해 애를 쓰며 사는 사람의 인생을 측은해 한다. 같은 장소에 다시 찾아왔지만 인간인 이상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가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하여, 시인은 필요한 말인지 불필요한 말인지 알 길이 없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빗방울이 되어 하수구로 흘러가는 사람이 되어서 빗방울의 차이에 대해 말할 줄 아는 사람과 마주 앉아 있다. 그런 사람과 나도 마주 앉아 있기를 원한다.

반대말

반대말

 

모자의 반대말은 알 필요가 없다

모자를 쓰고 외출을 할 뿐이다

 

눈동자 손길 입술, 너를 표현하는 너의 것에도 반대말은 없다

마침내 끝끝내 비로소, 이다지 애처로운 부사들에도 반대말은 없다

 

나를 어른이라고 부를 때

나를 여자라고 부를 때

반대말이 시소처럼 한쪽에서 솟구치려는 걸

지그시 눌러주어야만 한다


또한 시인 김소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언어에 대하여도 예민한 감정을 드러낸다. 나를 어른이라고 부를 때, 나를 여자라고 부를 때, 반대말이 시소처럼 한쪽에서 솟구치려는 걸 얼마나 많이 지그시 눌러주어야만 했던가.

"식구들"이라는 시에서, 이미 이해한 세계는 떠나야 한다 마치 고향처럼/ 이미 이해한 사람은 떠나듯이 마치 부모처럼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 존재는 언제나 떠나는 존재다. 시인에게 인간은 끊임없이 부유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김소연 시세계

시, "열대어는 차갑다"에서 정말 멋진 메타포를 시인은 완성한다. 

"하나의 문장으로도 세계는 금이 간다"

이 완벽한 메타포는 문장의 힘을, 우리가 받 딛고 있는 세계의 연약함을 단번에 드러낸다. 

우리가 아는 세계는 그렇게 단단하지 않음을,

우리가 모르는 문장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압도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은 의자가 되면 의자에 앉을 수 없게 되고, 사람이 되면 사람을 사랑할 없게 된다고 "포개어진 의자"에서 말한다. 그리고 "생일"이라는 시에서는 "미역이 제 몸을 부풀려 국물을 만드는 기적을/ 간장 냄새와 참기름 냄새가 돕고 있다."고 인간의 정을 담아 말한다.

미역이 제 몸을 부풀려 국물을 만드는 기적을 본 사람이 있는가? 미역은 물에서 불리고 불리어, 그것도 모자라 뽀글뽀글 끓는 물 안에서도 끊임없이 제 몸을 부풀려 간다. 모든 존재와 사물은 그런 운명이 아닐까? 소용이 다할 때까지 제 몸을 부풀려가야 하는.

김소연은 라이너 쿤체의 '포옹은 모든 사람을 배제한다. 한 사람만 빼고'를 인용하며 "두 사람"이라는 시를 썼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포옹을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포옹을 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세계에 갇히고 만다. 사람이 되면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까닭이다.

시인은 텅 빈 광장에는 음악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그림자가 외롭지 않다고, 그래야 춤을 출 수 있다고 "광장이 보이는 밤"에서 노래한다. 텅 빈 광장에 음악이 있기를, 그래서 그림자마저 외롭지 않은 세계가 되길.

댓글